박재진의 경험과 통찰 · Stories

현장에서 길어 올린
삶의 원리

오랜 현장 경험 속에서 마주한 질문들과, 그 질문에서 발견한 삶의 원리를 기록합니다. 직책과 조직을 넘어, 사람으로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닿는 이야기입니다.

연재 시리즈

수서서장 시절 · 2009년 8월

수록 편수

7편 (계속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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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충성을 잘하기 위해서는 위가 아니라 아래를 봐야 합니다

2009.08.24 · 도곡지구대 일일회의 · 인생경영

도곡지구대에서 직원들에게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합니까?"

답이 모두 같았습니다. 경찰청장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청장에게 충성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디를 봐야 합니까?"

직속상관인 서장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장에게 잘 충성하려면 지구대장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구대장에게 잘 충성하려면 팀장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팀장에게 잘 충성하려면 직속상관을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선이 위로만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그러면 경찰청장의 권한은 어디로부터 나왔습니까?"

대통령으로부터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로부터 나왔습니까?"

국민으로부터입니다.

그러면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권한의 근원은 국민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이반된 윗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따라야 할 곳은 권한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청장에게 가장 잘 충성하는 길은 청장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만 보고 있습니다. 위만 보고 있는 사람이 위에 있는 분에게 잘 충성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것은 권력의 작동 원리를 거꾸로 본 것입니다.

시선을 돌려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 편안하게 해드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분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잘 뽑았다고. 그 평가가 위로 올라가서 결국 대통령을 굳건하게 합니다. 그것이 다시 내려와서 우리 조직을 굳건하게 합니다. 위만 봐서 위가 굳건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봐서 위가 굳건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위가 아니라 아래를 봅니다. 직원들이 위만 바라보고 있을 때, 저는 그 시선을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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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팀제는 이름만 덧붙였지 실질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2009.08.25 · 본서 팀장 일일회의 · 임무역할

본서 팀장들과 마주 앉아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팀제란 무엇입니까?"

답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단어를 쓰는데 의미가 달랐습니다.

팀제가 본래 의미를 살려 작동하려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첫째, 팀은 자기완결형이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피라미드 조직에서는 직원이 기안한 공문이 계장·과장·서장까지 올라가서 결정이 내려옵니다. 의사결정의 권한이 정점에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팀제는 다릅니다. 팀이 일정한 권한을 부여받고, 그 권한 안에서는 팀 안에서 결정하고 처리합니다. 위로 올려보내고 다시 받아오는 절차가 없습니다. 그래야 속도가 나고, 그 자리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자라납니다.

둘째, 윗사람의 통제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윗사람이 모든 것을 지휘하고 통제합니다. 그러나 팀제에서는 권한을 부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관리합니까. 목표를 관리합니다. 히딩크가 선수들에게 했던 말과 같습니다. "너희가 배운 전술 열 가지를 자유롭게 활용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라. 이기는 것이 우리 목표다. 전술은 너희 마음대로 구사해라." 이것이 본래 의미의 팀제입니다.

셋째, 팀장 본인이 그 권한을 자기 것으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과장이 자꾸 들어와 윽박지르고 간섭하려 하면, 팀장은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장님, 팀제는 과장님이 저에게 역할의 일부분을 떼어주신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가 하겠습니다. 과장님은 제가 어떻게 해야 과장님을 잘 보필할 수 있는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팀원들을 어떻게 운영할지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이 말이 나오는 팀장이라야 진짜 팀장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직은 팀제라는 이름만 덧붙였습니다. 실질적인 역할은 전통적 피라미드 그대로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막은 것도 아닙니다. 본인들이 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어서 안 하는 경우도 있고, 그 의미를 몰라서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팀장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본래 의미의 팀장으로 자라달라고. 그렇게 자라나는 것이 가능하도록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지원하겠습니다. 저의 자리는 그것을 지원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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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검거 건수가 많다고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09.08.25 · 형사외근 일일회의 · 인생경영

형사외근 직원들과 마주 앉아 한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일하면서도 헷갈려하는 두 단어, 성과와 실적의 차이입니다.

실적은 결과만 보는 것입니다. 검거 건수가 얼마, 단속 건수가 얼마, 이렇게 숫자만 따지는 것이 실적입니다. 거기에는 의도가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 검거를 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단속을 했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직원들은 그저 숫자를 채우기 위해 헤맵니다. 목표가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그저 많이 잡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움직입니다.

성과는 다릅니다. 성과는 목표가 먼저 있습니다. 우리 관내에 절도가 많이 발생하니 절도 검거를 전년 대비 50퍼센트 늘려보자, 이런 목표를 세우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목표가 정해지면 우리의 강점이 무엇이고 약점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그중 어디에 집중할지 정합니다. 그렇게 활동한 결과 42퍼센트가 나왔다면, 그것이 성과입니다. 목표는 미달했지만, 그 과정에 우리의 의도와 전략이 들어가 있습니다.

차이는 분명합니다. 실적은 직원을 헤매게 하고, 성과는 직원을 움직이게 합니다. 실적은 결과만 따지고, 성과는 의도와 결과를 함께 따집니다. 실적은 끝나고 나면 평가할 거리가 없지만, 성과는 끝나고 나면 따져볼 거리가 남습니다. 50퍼센트를 목표로 했는데 왜 42퍼센트밖에 못 했는지, 우리가 어디서 어긋났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런 질문들이 성과 시스템에서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 의도입니다. 위에서 계획이 내려오면 우리는 그 계획을 따라가기만 합니다. 그 계획에 우리의 분석이 들어가지 않고, 우리의 전략이 들어가지 않고, 우리의 목표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직원들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른 채 검거 건수만 채웁니다.

저는 직원들이 의도를 가지고 일하는 조직을 원합니다. 그러려면 윗사람인 제가 먼저 의도가 분명한 계획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직원들에게 성과를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일을 시키는 사람의 책임은 거기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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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옆에 앉은 사람이 천사인지 도둑놈인지는 그 사람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2009.08.25 · 대치지구대 일일회의 · 생활지혜

대치지구대 직원들에게 한 가지를 가정으로 물었습니다.

"12시간씩 살을 맞대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보기보다도 싫습니다. 옆에 앉아 있는 것조차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운전석에 한 명이 앉으면 옆자리에 다른 한 명이 앉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싫다고 뒷자리로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12시간을 그 사람과 함께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 12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같은 12시간을 지옥처럼 보낼 수도 있고, 천사와 함께한 시간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 결정은 누가 합니까. 옆에 앉은 사람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결정합니다.

옆에 앉은 사람이 도둑놈처럼 보인다는 그 판단도 내가 한 것이고, 천사처럼 보인다는 그 판단도 내가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사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내 마음 안의 풍경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거꾸로 살아갑니다. 결정의 주체가 나인데도 마치 그 사람이 내 행복을 빼앗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12시간 내내 불편하고, 1시간을 1시간 그대로 지옥처럼 보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까. 내가 그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저는 옆에 천사가 앉았다고 생각하고 다닙니다. 그 사람의 문제는 그 사람의 문제일 뿐 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문제를 제가 떠안아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을 잘 의심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습니다. 의심하고 미워하면 불행해지는 사람은 그분들이 아니라 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옆에 앉은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두고 하루를 시작할지, 그것은 매일 아침 내가 내리는 결정입니다. 누구도 대신 내려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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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평생 현업에 찌들어 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2009.08.25 · 대치지구대 일일회의 · 인생경영

대치지구대 직원들에게 시간 관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일은 사사분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요하면서 긴급한 일,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그리고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 이 네 가지입니다.

우리 경찰이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 살펴보면, 거의 모두 중요하고 긴급한 칸에 매달려 있습니다.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에 매달리고, 신고가 들어오면 그 신고에 매달리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그 지시에 매달립니다. 하루가 그렇게 흘러갑니다. 한 달이 그렇게 흘러가고, 1년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에 미리 시간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니 모든 것이 닥쳐서야 긴급해지고, 긴급해진 뒤에야 매달립니다. 그러니 평생 현업에 찌들어 살게 됩니다.

행복하려면 어느 한 순간이라도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막 퍼덕거리는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쪽으로 시간을 빼내야 합니다. 직장에서 못 빼내면 가정에서라도 빼내야 하고, 가정에서도 못 빼내면 잠을 줄여서라도 빼내야 합니다. 그 시간이 곧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부탁합니다. 오른쪽 위 칸에서 사는 것을 멈추고, 오른쪽 아래 칸으로 시간을 옮겨달라고. 거기에 시간을 쓴 만큼 결국 오른쪽 위 칸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미리 준비한 사람만이 닥친 일을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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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자기 일에는 계획이 있는데 직장 일에는 계획이 없습니다

2009.08.26 · 개포지구대 일일회의 · 인생경영

개포지구대 일일회의에서 한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비번 날 어떻게 보내셨어요?"

한 시간 가까이 차로 이동해 산을 올랐다고 했습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여섯 시 반에 출발했고, 산 입구에서 시작해 봉우리 세 개를 세 시간 반에 걸쳐 돌고 내려와 절을 거쳐 하산했고, 도착해보니 저녁 여섯 시였다고 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제 아침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까?"

맑은 공기 마시며 충전해서 다음 날 근무를 잘 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습니다. 그 산에 가야겠다는 계획은 언제 세웠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지난주부터였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그분은 일주일 전부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산에 가서 건강을 다지고 머리를 식히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는 실행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짜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움직여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본인 입으로 개운하다고 답했습니다.

다음으로 같은 분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출근하면서는 어떤 생각으로 오셨습니까?"

오늘은 주간 근무 날이니 민원인이나 주민들과 잘 접하면서 사건 없이 무리 없이 퇴근하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거기에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답이 머뭇거렸습니다.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점수를 채우기 위해 지도장을 발부하고 수배자를 검거하고 신고 출동을 빨리 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가지를 짚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함정이 여기 있습니다. 자기 개인에 해당하는 일에는 계획도 있고 목표도 분명하고 실행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수립합니다. 등산 한 번 가는 데에도 일주일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공적 업무로 들어오면 그게 없습니다. 출근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자기만의 계획이 없습니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점수가 깎이지 않는 선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이것이 우리 경찰이 본연의 임무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일에는 그렇게 꼼꼼한 계획이 있으면서 공적 업무로 들어오면 그것이 없어집니다. 자기 일을 대할 때의 그 자세를 그대로 공적 업무에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야 직장에서도 보람이 살아나고, 매일이 내 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에게 청합니다. 오늘 출근하면서 한 가지만 정해보시라고.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그 한 줄을 자기 안에 세워보시라고. 그 한 줄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하루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하루가 쌓여 인생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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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내가 살아남으려는 일이 조직을 가라앉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2009.08.26 · 개포지구대 일일회의 · 인생경영

개포지구대 직원들에게 가치 충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과 점수가 따라붙습니다. 그 점수가 높아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점수를 올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점수를 올리는 방식이 우리 조직의 존재 자체를 흔들 때입니다. 내 개인의 존재감은 높아지는데 경찰이라는 조직의 존재감은 떨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기에서 가치의 충돌이 시작됩니다.

스티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무단횡단을 한 사람을 붙잡았습니다. 그 사람은 사정을 호소합니다.

"자식 때문에 급해서 한 번 건넜습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때 나는 어디에 서야 합니까. 그 사람의 사정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고, 점수를 올리기 위해 그대로 끊을 수도 있습니다. 끊으면 내 점수는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돌아서서 욕을 합니다. 다음 사람에게 이 경찰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다음 사람이 또 다음 사람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점수가 올라가는 사이에 우리 조직에 대한 신뢰는 그보다 훨씬 크게 깎입니다.

스티커를 발부하는 본래 목적은 그 사람을 골탕먹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안전을 위해서, 다음번에 같은 일을 하지 않도록 각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본래 목적에 맞게 행동하면 그 사람은 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점수만 보고 끊으면 본래 목적에서 멀어집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잃고, 조직도 잃습니다.

가치가 충돌할 때 어디에 서야 하는지는 도덕 교과서에서 다 배웠습니다.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충돌하면 공적 이익이 우선입니다. 머리로는 압니다. 그런데 행동이 따로 갑니다. 머리와 행동 사이의 그 간격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끊고 돌아서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남 탓을 합니다. 정책을 잘못 만든 위쪽 탓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안 끊으면 됐습니다. 끊어놓고 남 탓을 하는 것은 내 행동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부탁합니다. 내가 살아남는 일이 우리 조직을 가라앉히는 일이 되지 않도록 매 순간 자기 행동을 점검해달라고. 내가 탄 배가 가라앉으면 나도 결국 가라앉습니다. 그 원리를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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